나무 (작가_혜온) 그대는 내게 나무 그 어떤 나무보다 더 울창하고 열매가 많은 나무 그동안 난 그대란 나무 그늘 아래 내 안식을 찾았네 이제는 나도 그대의 나무가 되어주고 싶어 나란 새싹 심어보네 나의 아름드리 나무 그대 햇빛도, 물도, 흙도, 바람도 모두 그대에게 선물하고 싶어 그대의 안식을 찾아주고 싶네 나만을 위한 뿌리깊은 나무 나만을 위한 뿌리깊은 사랑 내가 받은 이 사랑 어떻게 갚을까 그대를 생각하면 내 가슴이 벅차올라 벅찬 이 내 가슴 선물하고 싶네 그러면 그대가 내 마음을 알까 난 오늘도 보이지 않는 이 내 마음 새싹으로 틔어보네
제목: 봄 (작가: 김명기) 봄이고 싶다 겨우내 걸쳐 입었던 칙칙한 외투 벗어버린 봄 장독 항아리마다 반질반질 행주질하는 봄 물오른 가지마다 여린 싹이 인사하는 봄 긴 밭고랑 음메 누렁이 밭갈이 하는 봄 행주질하는 아낙도 분주해지는 봄 종달이도 소쩍이도 노래하는 봄 깨어나는 봄이고 싶다
제목: 눈 밟는 퇴근길 (작가: 장별) 눈길을 뚜벅뚜벅 뽀드득뽀드득 발아래 눈이 질척질척 미끄덩미끄덩 문앞에서 터벅터벅 스으윽스으윽 무슨 이유든 행복한 퇴근길
수많은 교차로를 지나쳐 걷다가 빨간 신호등, 앞에 서서 물끄러미 빨간 불빛 안에 사람을 본다. 그가 나에게 속삭인다. "어디로 가고 있니?" "맞는 방향으로 가고 있어?" "여기로 가면 네가 가고 싶은 곳으로 갈 것 같아?" 고개를 휘저어 애써 잡생각을 떨쳐내고 보니 초록색 불이 깜빡이며 나를 재촉한다. 이 길이 맞는 길인지 판단할 새도 없이 결국 길을 건넌다.
장마 (작가: 김명기) 산 마루 턱에 풍선 몇 개 둥둥 짙은 먹구름 사이로 물폭탄을 터뜨려버렸다. 먼 산은 검은 상복을 걸치고, 긴 추억과의 이별은 끝내 슬픈 눈물이 되어 온 세상을 덮쳤다. 굵은 빗망울에 사파첸스 꽃잎도 고개를 떨구었다. 전깃줄엔 연신 수정 구슬이 구른다. 2020년 긴 장마. 코로나로 인류가 힘든데, 장마마저도 지리하다.
비오는 날 산골 아침(작가: 김명기) 숲에서 뿜는 꽃내음개쉬땅, 싸리, 범부채, 동자꽃향들의 어우러짐이 코끝 찡하게 진한,비오는 산골 아침 이 빗속에 서글픈 새 한마리맑은 소리로 외로웁다.젖은 날개, 쉴곳을 잃었나힘들지 조금만 참자!남편의 진심이 전해진 말.조금만, 조금만삶이 내게 건내는 위로 그렇게 조금만은 할머니가 되었고,모든 것이 허허롭다. 산골의 이 아침이문득 외롭다. 날개 젖은 작은 새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