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살이) 보일러 수리기(부제: 집주인에게 갑질을 당하다)

    전세집의 보일러가 고장났습니다. 집주인에게 여러가지 부당한 일을 당하고, 우여곡절 끝에 보일러를 교체받았습니다. 그 과정을 여기에 남깁니다. 

    #1 이사 오고 한 달이 채 되기 전에 보일러가 말썽을 부렸다. 

     

    아무것도 안했는데 보일러가 고장났다

     

    다행이도 여름이라 큰 문제는 없었지만 가끔 온수가 잘 나오지 않아 찬물 샤워를 해야만 했다.


    불편했다.

    집주인에게 연락을 했다. 전에 살던 전셋집에서도 보일러로 속 썩고 살았는데, 이번엔 다르겠지 하는 생각으로 전화를 했다. 하지만 역시나,  상황을 전해 들은 집주인은 참고 살란다.

     

    집주인 왈: ‘세살이’는 다 그런 겁니다. 남의 집에 살면서 어떻게 편하게 살려고 합니까?

     

    현실은 언제나 드라마보다 더 막장이었다. 내가 들은 말이 현실인지 싶었다. 너무도 당당한 집주인의 태도에 지금이 21세기가 맞는 건가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처음 들어본 갑의 언어가 너무도 생경해서 실감이 안됐다. 그리고 집주인은 전화를 끊으며 덧붙였다. 이제부터 보일러 수리 같은 건 연락도 하지 말고 자체적으로 수리해서 생활하라고..


    좋은 게 좋은 거라 여기고 싶었다. 혹여라도 전세보증금을 조금이라도 떼일까 싶어 겁이 났다.

     

    결국 자비로 수리를 했다.


    #2 겨울이 왔다. 또 보일러가 말썽을 부린다. 야속하게도 이번 겨울은 한파의 연속이다.

     

     

    2021년은 유난히 춥고, 또 눈이 많이오는 겨울이다

     

     

    집주인에게는 연락하고 싶지 않았다. 수리는 자비로 하라 그랬으니까..

     

    어떻게든 참아보려 하다가, 긴 고민 끝에 수리기사를 불렀다. 수리기사가 보일러를 보더니 대뜸 집주인과 통화하고 싶으시단다. 집주인과 면식이 있는 사이 같았다. 잘됐다는 생각에 냅다 전화를 걸어 넘겨줬다.

     

    기사는 보일러를 교체해야 한다며 집주인에게 상황을 설명했다. 용건이 끝나고 전화를 끊나 싶었더니 집주인이 나를 바꿔달랜다. 받았다. 받자마자 집주인이 언성을 높인다. 일을 왜 이따위로 하냐며 화를 낸다. 언제는 수리는 연락도 하지 말라더니. 지금은 왜 본인의 소유물인 보일러 수리를 하는데 허락도 없이 기사를 불렀냐며 막막을 해댄다.

     

    집주인 왈: 거긴 제 소유집입니다. 내 소유물을 왜 세입자가 마음대로 수리합니까?

     

    집주인은 보일러를 교체해야 한다는 사실이 꽤나 부아가 났는지 본인의 화가 풀릴 때까지 연신 나의 사과를 받은 후에야 전화를 끊었다. 


    정신이 없었다. 또다시 집주인의 갑질을 당한 상황에서도 혹여 조금이라도 원만히 일을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애를 쓰고 싶었다. 결국 보일러는 수리도 못하고 출장비만 지출한 체 수리기사를 돌려보냈다.

    몇 시간이 지나고 집주인에게 조심스럽게 전화를 걸었다. 그럼 보일러를 어떻게 해주실 건지 물었다. 한데 하는 말이 본인이 직접 와서 보일러를 봐야겠단다. 그럼 언제 오시냐 물었다. 일주일 후에 오겠단다. 한파라는 생각은 하지도 않는다. 


    한번 더 마음을 가다듬고 , 너무 늦다며 조금 더 일찍 와주시면 안 되냐 물었다. 아니 부탁했다. 집주인이 또다시 화를 낸다. 본인이 본업이 있는 사람인데(현집과 차로 10분도 걸리지 않는 거리에서 가게를 한다), 세입자가 오라면 가야 하냐며 또다시 언성을 높인다. 집도 우리 집에서 차로 5분도 안 걸리는 거리인데.. 

     

    아쉬운 사람은 나이기에 한번 더 부탁했다. 요즘 날이 너무 추워서 생활하기가 정말 힘들다. 사정을 봐주시면 안 되냐. 며칠이라도 일찍 와주시면 안 되냐고 물었다. 집주인이 하는 말. 그건 내 사정이란다.


    우선 알겠다고 하며 전화를 끊었다. 결론은 일주일을 기다리기로 했다. 난 집주인의 통보를 기다려야 하는 을인 세입자였다. 기분이 정말.. 우울하다 못해 무기력했다. 이런 게 바로 갑질이구나 싶었다. 내가 갑질을 당하다니. 서럽더라. 그날은 그냥 멍하니 있다가 밥도 제대로 못 먹고 잠만 잤다. 

    다음날이 됐다. 자는 동안 보일러는 고장으로 인해 전원이 꺼져있었다. 그래서 집안이 썰렁했다. 꺼진 보일러 전원과 찬 공기가 흐르는 집안을 보니 화가 났다.

     

    화가 많이 났다. 아주 많이 났다.


    난 왜 전세계약을 맺고 정당하게 살고 있는데도. 인간의 최소한 기본권도 누리지 못하며 살아야 하는 것일까? 더 이상은 이 부당한 상황을 참기 힘들었다. 그동안도 미련하리 만치 너무 많이 참았었다.

     

     

     

    보일러 수리 책임을 누가지는지에 관한 민법과 대법원 판결

     

     

    찾아보니 우리 법과 판결은 임차인에게 책임 없이 보일러가 고장 난 경우에 임차인이 수선의무가 없다고 "명확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서울시 분쟁 조정기준에서도 권고사항으로 보일러 사용연수가 7년 이후에는 세입자에게 배상책임이 없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만약 7년이 지났다면 분쟁을 피하기 위해 임대차 계약서에 보일러 수리 주체를 명시할 것을 권하고 있다.  

     

    우리 집 보일러의 나이는 10살도 훌쩍 넘었고, 내가 잘못 사용한 것도 없었다. 

     

    세입자인 내 잘못은 아무것도 없다. 

    찾아보니 고장 난 사실을 집주인에게 알리고, 그 고장으로 내가 전셋집을 제대로 이용할 수 없다면 먼저 자비로 수리한 후에 집주인에게 청구하면 된다고 한다. 

     
    집주인에게 장문의 문자를 보냈다. 그간 혹시 도움이 될까 남겨놓은 보일러 오작동 증거사진도 여러 장 함께 보냈다. 내용의 요지는 이러했다.

     

    1. 말이 통하지 않으니 전화통화는 하지 않겠다. 앞으로 문자로 연락해라.
    2. 집주인에게는 기본시설 유지 의무가 있다. 보일러 수리를 1주일 후에 오겠다는 건 의무 태반으로 보인다. 그것도 이 한파에.
    3. 보일러 고장으로 인해 혹시 동파가 된다 해도 나에게는 선관의무가 없음을 밝힌다.
    4. 정상적인 환경에서 생활하는 건 인간의 기본 권리다. 그래서 난 보일러 수리를 할 것이다. 수리비는 나중에 청구하겠다.
    5. 갑질 하지 말아라. 더 이상 참지 않는다.


    문자를 보내고 바로 수리기사를 불렀다. 수리를 마치고 수리기사 왈 앞으로 우리 보일러는 돈 먹는 보일러란다. 수리를 해도 그때뿐이고 언제 다시 망가질지 모르는 상태. 교체만이 답인 상황이라고 했다. 어제의 상황을 함께하며(출장비만 받고 가신 수리기사분이었다) 우리의 딱한 사정을 아는 기사가 우선 수리는 해주었지만 꼭 나중에 교체를 해야 한다며 당부했다. 

    우선 급한불은 껐다.


    수리비 영수증을 증거로 남겨놓고 집주인에게 수리를 했다며 문자를 보냈다. 교체를 해야 하는 건 여전하다는 압박과 함께. 문자로 소통하자고 한 뒤로 집주인에게는 한 번도 연락이 없었다. 읽은 기록은 있으나, 그 말 많고 갑질의 언어를 쏟아붓던 집주인은 아주 조용하기만 했다.

    그렇게 또 하루가 지났고 보일러 수리기사에게 한번 더 연락이 왔다. (바뀐 나의 강경한 태도가 영향이 있었는지) 집주인이 보일러 교체를 해달라고 했단다. 그런데 보일러 기사분이 나에게 사과했다. 

     

    보일러 기사: 죄송한데요. 전 이 집 보일러 교체를 못해주겠습니다. 

     

    그동안 집주인이 보일러 수리기사분에게도 갑질을 너무 해대서 더 엮이면 골치 아파질 거 같단다. 그래서 나에게 양해를 구하고자 전화를 했다고 한다. 이때부터는 슬슬 웃음이 났다.


    허허, 이야.. 진짜 우리 집주인 대단하구나. 인성이 아주 막돼먹었구나.

     

    어쨌든 알겠다고 했다. 내가 오히려 너무 미안하다고 했다. 기사분은 아니라며 집주인에게 잘 얘기하겠다고 다른 보일러업체를 소개하겠다고 했다.


    그렇게 웃지 못할 상황이 지나고. 또 하루가 지났다. 다른 업체에서 연락이 왔다. 갑자기 보일러 교체를 하러 왔단다. 집주인에게는 연락 한통 받은 적이 없는데, 새로운 보일러 기사님이 오셨다. 계속 연락 한통 없이 시간대를 잡아 기사를 보내는 집주인의 심보가 골탕을 먹이려고 하는 게 여실히 느껴져 유치하단 생각이 들었다(집주인의 나이는 거꾸로 먹는 건가).

     

    다행하게도 재택근무 중이라 보일러를 교체했다. 정말 우여곡절 끝에 보일러를 교체한 것이다. 이젠 뜨거운 물도 잘 나오고 더 이상 집이 냉골이 되지도 않는다. 어차피 해줄 거 진작에 해주지..

     

    하지만 완전히 끝난 건 아니다. 아직 보일러 수리비를 못 받았으니 숙제가 남았다. 두고 봐라 집주인. 난 앞으로 온 힘을 다해서 내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싸울 거다.

    이 시각에도 집주인의 갑질로 인해 어려움을 겪는 사람이 많겠지? 조금이나마 보탬이 될 수 있길 바라며 이 글을 쓴다.

     

    오늘도 우리 사회의 갑질이 없어지길 기도하며 긴 글을 마친다.

     

     

    전셋집이나 월세집을 구할 때 꼭 확인해야 할 것!

    보일러에는 설치시기가 적혀있습니다. 설치시기를 보고 3년이 지났는지 확인하세요. 일반적으로 보일러의 무상수리기간이 3년이라고 합니다. 3년 전이라면 집주인도 흔쾌히 수리를 해주겠죠? 그러니까 3년이 지난 경우라면 보일러 수리비에 대해서 집주인하고 꼭 협의하고, 임대차 계약서에 특약사항으로 남겨야 합니다.

     

    만약 보일러가 설치한지 7년이 넘었다면, 내가 사는 동안 보일러가 고장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명심하세요. 보일러의 수명이 약 7년 정도라고 합니다. 길어야 9년이라고 합니다. 들어갈 집이 이미 보일러가 7년이 됐다면, 이제 점점 고장이 많아질 시점이라는 이야기입니다.

     

    보일러는 매우 격렬한 장치입니다. 매우 뜨겁고, 물을 끓이면서 발생하는 압력도 버텨야하고, 모터가 물도 순환도 시켜줘야 합니다. 안전을 위해 여러가지 센서들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7년정도 지나면 이런 부품들이 하나하나 망가집니다. 그러니까 명심하세요. 집을 보러 가셨다면, 보일러실에 들어가서 설치시기를 확인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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